天花園

Frage

Outer Gods 2019. 4. 4. 00:40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함민복가을 

  

  “ 너희에게 믿음을 잃은 나에게 다시 한 번 믿음을 줄 수 있다면. “

  느리게 불던 바람의 새로 옅은 소리가 섞인다. 희미한 시야의 너머에 걸렸던 달빛이 바람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그 자락을 쥐고 기우는 새로 섞인 소리가 있었다. 곧 있으면 저 빛은 사그라져, 또 다른 이가 내미는 손길이 뒤덮을 것이었다. 그 전에 의미를 알아야 하는가. 저에게만 유한한 것이니 급히 생각하여 뒤틀리는 일은 없어도 좋다.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의문만이 남아 걸음은 매이고, 생각은 침잠한다.

  표면의 것이 아니라, 속에 패여 텅 비어버린 것을 막아달라는 의미신가. 그게 가능하다면 어느 누가 아파 울며 치를 떠는 감각을 느끼겠는가. 그 마저도 귀히 여김을 받는 이야기의 일환으로 치부하며 웃던 생각이 가라앉으며 꼬여, 난잡하게 뒤섞인다.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제가 겪어보지 않으니 가벼이 여기려다가도 쉬이 그러지 못하기에 어쩌면 담담한 시선이 떠오르는 빛 아래 눈을 감는다.

  그러신가요, 그러셨나요.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할 이에게, 오히려 그것을 내어주었을 때 위험할지도 모르는 이에게 그리 여지를 주며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질없다 못해 허망하게 그것을 외면할 수도 있는 이에게 왜 그것을 해보이겠느냐 물으시나요. 가만히 닫히는 소리의 끝에 느리게 멈추는 오르골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았다.

  그것은 애정이십니까. 덧없다는 것으로도 차마 전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허망하게 사라질 수 있는 당신께서, 그 위기를 넘긴지 얼마나 되셨다고 제자리서 역할을 다 하십니까.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불러주지 않는다면 비단 신뿐만이 아닌 모든 것이 힘을 잃고 형태를 잃는다. 무한한 애정을 받아본들 본질적인 무언가에 닿지 못하니 당연한 게 아닌가. 이름을 불러본들 믿어주지 않는다면 그 의미는 제 힘을 갖지 못 한다.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신이 울리는 그 오르골 소리가, 닿았다가도 끊어진다.

  저가 쏟아 붇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하지를 못하니, 그 형태는 사라져 무너진다. 곧 꺼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형태를 그리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도 그게 무너진 것은 또 온전히 제 책임이라. 이곳에 남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 소리의 시작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눈앞의 풍경은 무엇인가.

   

  이것은, 꿈인가, 현실인가.

  최근 저는 계속해서 어두운 색에 물든 것을 날려 보내느라, 날이 밝기 직전에 감았다, 휘영청 떠오른 것이 눈을 아프게 찌를 때가 되고 나서야 그 숨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끊어질 듯 미미하게 들리던 소리의 시작이 어딘지 알지 못해 헤매는 것도 취미에는 없기에 외면했던 것이 명확히 꽂혀 드는 시간에 눈을 감은 것은 또 얼마만이던가. 그렇기에 지금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것이 꿈이라면, 그건 또 어째서라고 해야 하는가.

  꿈이라는 것이 본디 제 깊은 기억의 무언가가 발현이 되는 것이거나, 속에 감춰 품고 있던 욕망이나 욕심이 형체를 갖춰 그 손끝에 닿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인데, 이 오르골 소리는 분명 한 번 정도나 명확하게 들었던 것이다. 제 속에서는 무엇을 기억하고 바라고 있었나. 그것이 요 며칠을 이어지던 제 행동과는 또 무슨 연관인가. 느리게 눈만 깜빡이다, 소리를 따라 느긋한 걸음을 옮긴다고 한들 무엇이 힘들겠는가.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도 알 수 없으니 힘들 것도 없다. 아마도, 들어본 적이 있던 그 소리의 끝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거울처럼 말갛게 뭔가 비치는 호수가 있던 곳을 저는 알고 있었다. 달 조각을 걸어 무게감이 더해진 것이, 이젠 자연스레 그 자리에 나려 앉아 빛을 발하는 모습이 퍽이나 이 풍경과 어울려 신기한 일이었다. 주인의 곁에 있으니 그러는 것은 당연한 것임에도, 저는 그 풍경의 앞에서 제대로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그저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지, 어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주어진 게 없으니 선택도 할 수 없다.

  이것을 아름답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본디 밤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정적인 시간임과 동시에 난잡하게 뒤엉킨 시간이며, 가장 고결하고 지켜지는 시간이자 언제나 난도질 되어 찢겨 나가는 시간이었다. 그 중심에 있는 당신에게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 풍경이 감히 현실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당신의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한 번 꼬아 생각한 그 머리로는 쉽사리 뱉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런 당신에게 드는 것은 의문이 전부였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감히 그것은 증명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감겼던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움직인다 하여 그것이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자신의 의지를 가졌다고 하여 그것을 살아있다고 부르던가. 이름도 잊혀지고,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존재가 억지로 이름이 이어져 맥이 뛴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라고 불러야 하나. 따진다면 당신의 이름은 지워져 사라졌으니, 새로이 이름을 받은 존재가 원래의 자리를 찾았다고 하여 그것을 당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을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이미 죽은 것을 억지로 연명을 시켰다 이야기 하더라도 틀리지 않았음을 모르지 않았다. 저도 아는 것을 당신이 모를 리는 더 없었다. 어쩌면 혼란만이 남아 모를 수도 있겠지. 그렇기에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며, 그렇기에 그런 문장을 남겼을지도 알 수 없지.

  그런 당신은 무엇을 위해서 이 밤을 지키는지, 그것은 순수히 의문으로 남아 생각의 위로 덧씌워진다. 자신이 돌아온 것이 현실인지, 아님 어느 누군가의 꿈인지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당신은 무엇을 위해 그 오르골의 태엽을 감고, 그 달빛으로 자락을 펼쳐, 소중하여 별이라 부르던 아이들을 바라보는지 알기 어렵다. 어찌하여, 그것을 하는가. 지독한 배신에 치를 떨며, 손절하여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이가, 어찌하여 그러나. 마땅히 그것이 의문이라고 한들 소리는 되지 못한다.

  본디 그 형제가 그러하듯, 당신도 사랑하여, 저를 상처 입히는 칼날을 들이밀었다고 한들 애정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아님 그게 저가 돌아온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할 것인가. 당신의 기억에서 저가 그것을 했읜 그저 흉내를 낼 뿐이라고 이야기 할 건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 하고 싶다면, 해야 한다. 여지껏 제 뜻대로 된 것이 없었을 당신이 아니던가.

   

  그런 당신이 무슨 답을 기다려 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다.

  사람이라는 게, 사람을 비롯하여 간사한 것은 없어도, 무지한 것은 있다. 신도 알 수 없는 것이 미래라고 하던가. 무지는 불안으로 뿌리내려 생각과 감정을 뒤틀어버린다. 물론, 저의 모국의 이들은 불안보다는 저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에 대한 탐구욕으로 모든 걸 비틀어 버리는 유형이긴 하다만서도, 그것은 저보다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게 뻔했다. 그것에 휘말린 이가 아니던가.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던 어느 이의 손에 그리 되었던 게 당신이 아닌가. 그리고 그와 비슷하게 제 흥미를 뒤쫓은 이의 손에 그 형제를 그러쥐지 않았던가. 모든 결과를 알지 못한, 알고 싶어 했던 무지의 끝에 애먼 피해만 입은 당신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것은 매우 가벼운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믿어 사랑한 이에게 배신을 당해본 적 없는 사람이나 뱉을 수 있는 것으로, 당신에겐 신뢰를 주는 게 아니라 역시나, 하는 마음만을 심어줄 감상이겠지. 그들이 알지 못하여 그리 했겠지, 그 무지함이 싫었던 것이겠지, 그러니 그 마저도 애정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겠나요. 이해하고 넘어가야지. 뼈에 사무치는 것보다 아프게 울며 눈을 감아본 적 없으니, 가벼이 뱉어내는 감상의 언저리 어디에 당신이 있나. 할 수 있겠느냐 묻던 당신의 질문에 철저히 반(反)하는 게 아닌가.

  신뢰를 할 수 있게, 그럴 수 있느냐 묻는 이가 철저히 배제된 답이라니, 얼마나 한심하고 우스운 대답이란 말인가. 차마 그것을 답이라고 할 수는 있는 것인가. 사설일 뿐이며, 제 알고자 하는 욕심을 채우려는 연속된 다른 질문이지 않은가. 저는 무엇이 말하고 싶어 내어주겠다 했던가. 이미 그 의미도 사라질 만큼 가벼운가?

   

  이것은 꿈인가, 현실인가.

  신기하지 않은가. 믿음을 갖게 할 수 있느냐 질문에 돌아온 답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것은 비웃음과 무엇이 다른가. 놀라울 정도로 질문을 배제하고, 그 대상을 이해하지 않고 이야기 하는 감상에 어떤 생각이 들까. 그 마저도 할 이유가 없어 당신은 침묵하여 그 시간에 매여 있는가.

  잠이 든 제게는 꿈일 것이며, 순간 매인 시간일 터다. 그러나 그 이름이 명확하게 기억되어, 오르골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으니 이것을 현실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살아있는 것인가. 부질없이 사라질 수 있는 존재가, 눈을 깜빡이며 혹은 제 생각에 빠져 이 공간 한가운데에 매여 있는 것은 현실이며, 진실인가. 이 모든 게 제가 보고자 했던 허상 중 일부인가, 당신이 바랐던 허상인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문장은 소리가 되지 못한다. 그저 입안에, 생각에, 얼핏 스치는 눈매에 맴돌다 곧 가라앉아 저 깊은 곳으로 잠식한다. 의미가 없는 문장의 연속일 뿐이며, 바라는 것은 그 믿음을 갖게 할 수 있느냐의 답인 것을, 빙, 애둘러 자신은 알지 못 하겠다 답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무엇이겠나. 알지 못한다. 나는 겪어보지 못했으니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저는 신뢰를 주려 행동한 적이 없으니 자연스러운 것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뢰를 주고자 한다고 하여, 주어질 것 같았다면 애진즉 이 세상에 불신은 없었을 것이다. 신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말처럼 재미난 모순이 무엇인가. 저가 노력하면 무엇을 하나, 그이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 부질없는 짓이 아닌가. 당신의 질문은 틀리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옳다고 하는 게 애매해졌다.

  진심이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내어드리겠다 했으니, 그것은 진심이었다.

  변하지 않을 사실이며, 그것을 위해 전한 문장이 아니었나. 그러나 당신께서 그것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그것은 원래도 무의미하여 흔들리던 것이 더 흐리게 물들어 사라질 게 분명했다. 마음이라는 것이 간사하여, 주는 만큼 받고 싶고 그런 것인데, 내어주는 것 외엔 할 줄 모르니, 당신께서 그 신뢰를, 애정을 내어주셨다 상처를 받았다면, 지금은 그저 마음 하나 받아가 보는 건 어떠신가요.

  느긋한 웃음의 끝에 오르골 소리는 멀어진다. 곧 다른 이가 눈을 뜰 시간임을 의미하는 것처럼, 풍경은 순간 어두워지며 빛무리가 슬 눈을 뜬다. 역시 이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기 어렵다. 옅은 한숨의 끝에 맴도는 문장은 당신이 바라는 답은 아니었다. 내어줄 수 있는 건, 답이 아닌 다른 것뿐이니, 그저 받아가세요. 그 처분은 당신의 자유가 아니시겠나요.

  밤이 저무니, 누군가는 눈을 감고 쉴 수 있을 시간이 닿아온다. 저는 돌아갈 시간임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그러니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아도 좋으니, 지금은 당신의 자리를 지키고만 계세요. 당신께서 계속 그 자리를 지키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나요. 신뢰를 받는 것은 제게 어려우니, 그저 내어만 드릴 테니, 당신께서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이곳에 매여 있듯 떠오르실 요량이라면 이곳에 걸어두고 갈 테니, 버리시든 외면하시든 마음껏 하세요.

   

  ” 오르펠, 이것은 꿈인가요, 현실인가요. 그 답이 어렵다면 가만 쉬세요. 생각해본들 꼬인다면 지금은 물러두세요. 언젠간 알 것 아닌가요. 잊혀지지 않는다면 당신께서 생각하실 시간은 충분하지 않나요. “

   

  저무는 해의 끝에 오르골이 들릴지 알지 못한다. 제 시간의 끝은 있으니, 이 모든 시간이 끝나 사라지기 전에는 그 답을 얻으시길 바라면, 그것을 당신께선 들어주실 겁니까.

   

오늘도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 것 같습니다

함민복가을